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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ovie2013. 4. 22. 00:31

이것은 아주 오래전의 이야기이다. 태초에 소년과 소녀가 있었고...

큐 개봉을 며칠 앞두고 마음의 준비를 하며 옛 기억들을 뒤적이다가 하드디스크에서 그날 찍었던 몇 장의 사진을 찾아냈다. 늘 이런 식이다.  왜 찍어놓고 올리지를 못하니. 여튼. 그 사진들로부터 그날 상영관 안의 들뜬 분위기가 고스란히 전해져왔다. 2009년 11월 25일 코엑스 메가박스 서태지 M관.

6월에 일본에서 개봉한 이후 거의 5개월에 걸친 기다림이 끝나는 날이었다. 슬슬 인내심이 바닥을 드러내고 있던 즈음 국내 개봉이 확정되었고 - 이것은 이번 큐 개봉도 마찬가지였다 - 개봉일보다 일주일 이상 일찍 볼 수 있는 메리트와, 에바 팬들을 대놓고 노린 저 쇼핑백 속의 스페셜한 내용물 때문에라도 이것은 꼭 참여해야만 했던 이벤트. 치열한 예매전쟁에서 승리하여 마침내 손에 쥔 한장의 티켓. 그것은 오타쿠 매니아의 인증서이자 자부심의 표시였고, 새로운 시리즈로서의 에반게리온의 출항을 함께 할 수 있는 탑승권이었다. 서는 기존 시리즈의 재탕이었으니까.

코엑스와 잠실야구장이 코앞에 있다는 것은 우리 회사의 큰 장점이다. 버거킹에서 베이컨더블치즈버거로 저녁을 간단히 때우고 들어선 코엑스 메가박스는 입구에서부터 평소와 달랐다. 퀄리티는 둘째치더라도 나름 이번 이벤트에 신경쓰고 있다는 느낌. 그리고 한손에 전리품인 쇼핑백을 든, 누가 보더라도 같은 기대와 같은 설레임을 품은 사람들.

한참을 그렇게 로비에서 축제의 분위기를 즐기다가 당시에 아마 메가박스 코엑스에서 가장 큰 관이었던 서태지 M관으로 입장.

자리에 앉아서 이제나 저제나 시작할까 마음졸이고 있는데 뜬금없이 에반게리온 파 홍보대사라며 잘 모르겠는 아이돌같은 애들이 우르르 몰려나왔다. 티아라란다. 뭐 지금은 나름 유명하다 하겠지만 이때만해도..몇번 들어보긴 했는데 누가 누군지도 모르겠고 관심도 없고..그사이에 얘들도 부침이 꽤나 많았구나. 새삼 시간이 많이 지났다는 생각이 든다.

뭐 자기들도 에반게리온을 좋아한다며..에반게리온은 삼각관계 이야기라며 - 사실 이때 쥐뿔도 모르는 애들 델다놓고 에바의 인기에 편승해서 이름이나 알리려 한다고 속으로 조금 발끈 하긴 했는데 나중에 생각해 보니 딱히 틀린 얘긴 아니잖아? - 여튼 장내의 시큰둥한 분위기에 압도된 것처럼 그렇게 존재감없는 홍보대사의 소개순서는 흐지부지 끝나버렸다. 이봐요. 우린 현실의 예쁘장한 여자애들 따위엔 관심이 없어요. 그걸 아직도 모르겠어요?

그 이후의 이야기는...그날 집에와서 바로 끄적인 예전글이 있으니 이쯤에서 줄이도록 해야겠다. 집에 돌아가는 길에 같은 쇼핑백을 손에 든 채 잔뜩 들뜬 목소리로 누군가와 통화하던 지하철 같은칸의 청년. 정말 말을 걸어보고 싶었다구요.-_- 이날 이후 개봉일에 가장 큰 화면에서 보고싶은 마음에 영등포CGV 스타리움관에서 보고, 포스터 준다는 말에 또보고 두번보고. 총 극장에서만 다섯번을 보았다. 앞으로 별로 깨질것 같지 않은 나만의 기네스북인걸로..

다시 현재로 돌아와보면 큐는 정말 개봉 확정되는 마지막까지 사람을 들었다 놨다 했다. 한다, 안한다, 수입사가 망했다..결국 4월초로 확정이 되었다가 날짜도 바뀌고..꼭 파 때와 같이 5개월 가까이 각종 스포들을 피해다니느라 수고했다 김버들! 내가 이꼴을 되풀이하기 싫어서 일본어를 배운건데... 큐는 꼭 개봉일에 일본에 가서 보겠다며. 결국 그정도의 수준에 도달하지 못해서 어설프게 절반만 알아들으며 보느니 깔끔하게 번역된걸로 보는게 역시 낫겠다며 깨끗이 포기했지만 여튼 그렇게 1년간 공부한 일본어를 지금 쏠쏠하게 써먹고 있다는 훈훈한 후일담...

이번엔 이런 이벤트는 없다. 다만 상영일 전날 저녁에 큰 상영관에서 하는 전야상영 금요일에 서 파 큐 연속상영이 있긴 한데..굳이 체력 깎아먹어가며 연속상영까지 볼 필요는 없을것 같고. 그냥 전야상영만 보기로 했다. 덕분에 수요일에 퇴근하고 영통까지 가야된다. 젠장.

이날 그곳에 흘러넘치던 순수한 열정, 마지막 30분간의 놀라운 집중도는 어떤 극장에서도, 어떤 영화제에서도 경험해보지 못한 것이었다. 그리고 차회예고의 마지막 장면에서 떠져나오던 함성과 박수소리는 아직도 귓가에 생생하다. 감상에 잔뜩 젖어 마지막으로 던져보는 무리수. 세상을 바꾸는 것은 바로 이런 사람들의 정제된 마음들이 아닐까. 스티브 잡스도 빌 게이츠도 결국은 오타쿠일 뿐인데...

 

 

 

 

Posted by Driftwoo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