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토록 기다려왔던 지산락페가 끝나버렸다는 공허함. 게다가 휴가 마지막날이라는 절망감 속에 선택한 매우 즐거웠던 우디 앨런 감독의 영화.
유럽에 가본적이 없으니 파리에 가본적은 당연 없다. 나에게 있어 파리란 그저 영화속에서 보여지는 이미지 뿐. 그나마 최근에 본것들은 '사랑해, 파리'라던지 홍상수감독의 '밤과 낮' 일까..그리고 좀 뭐하지만 '노다메 칸타빌레 최종악장' 정도?
보통 파리를 배경으로 한 영화는 그 자체로도 예술이 된다고 하는 파리의 풍경을 맘껏 담아내고 활용할 수 있는 메리트가 있으며, 이 영화 역시 마찬가지다. 아마 당신에게 파리 여행에 대한 기억이 있다면 영화를 보는 내내 '아 저기! 가본적 있는데' 하면서 잠깐씩 추억에 잠길지도 모르겠다
이 영화는 판타지다. 그간 우디 앨런 감독 영화속에서 흔히 보여지던 기법을 고스란히 답습하고 있는.
구형 푸조에 올라타고 길이 도착한 1920년대의 파리는 그가 늘 생각하던 가장 이상적인 Golden Age다. 거리마다 예술적 영감이 넘치고 교과서에서나 볼 수 있던 유명한 예술가들이 바에서 술을 마시고, 그런 그들이 길을 환영하며 밤새 문학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곳. 그리고 속물적인 - 어찌보면 일반적인 - 주제에만 관심있는 약혼자와는 달리 길의 작품을 좋아해주고 굳이 표현하자면 '말이 통하는' - 소통 역시 우디 앨런 감독의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중의 하나다 - 아름다운 여인 아드리아나가 있는 곳.
하지만 '그 시대의 여인'인 아드리아나 역시 '그 시대'에 염증을 느끼며 모네의 시대가 Golden Age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모네에게는 르네상스 시대가 Golden Age라는 불편한 진실. 이런 단순하지만 직설적인 메세지 - 결국 자신이 사는 시대가 Golden Age라는 - 를 다소 은유적이면서 유쾌하게 풀어내는 것도 감독 재능이겠지.
또한 이 영화는 아는만큼 보인다. 과장 조금 보태서 현학적이라고 하고싶을 정도로 지적 유희를 즐기고 있다. 1920년대의 파리 속에서 끊임없이 스쳐지나가는 교과서에서나 보던 사람들. 영화 볼땐 헤밍웨이나 스콧 피츠제럴드, 달리 정도 알아봤을까? 하도 궁금해서 집에와서 이것 저것 찾아보고 나서야 아..이사람이 그사람이구나 하면서 영화속 기억을 다시 한번씩 떠올릴 수 있었다. 만일 나에게 그 시대의 문화적인 배경에 대한 소양이 조금이라도 더 있었다면 훨씬 즐겁게 볼 수 있었을텐데.
마지막으로 한가지 질문을 던져본다. 만일 한 2100년 정도의 현실 부적응자이며 과거지향형 예술가가 그 푸조에 타고 우리시대로 시간여행을 한다면 과연 그 술집엔 누가 있을까? 폴 오스터? 제임스 터렐? 과연 100년후의 사람들이 동경할만한 우리시대의 예술가는 누구라고 생각해?